[도서 리뷰] 맙소사, 마흔 – 어서와 마흔!

이제 곧 마흔이다.

이제 어쩌면 인생의 반을 찍었을지도 모르는 마흔의 문턱에 서있으면서 난 올해 초부터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고, 또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생각하면서 보내고 있다. 20, 30의 문턱에서도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닥 진지하지는 못했던것 같다. 그때는 앞으로의 내 삶이 무한대로 남아 있을것 같았기에…

마흔이 되면서 처음으로 남은 시간이 무한하지 않은것이 실감이 났고, 죽음의 공포도 가끔씩 짧게 찾아온다.

인간이 죽지 않고 계속 살 수 있다면 좋을것 같은데, 오히려 행복을 못 느끼고 살 것이라고 한다.  인간의 삶에는 끝이 있기에,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마흔이 되면서 그동안엔 막연하기만 했던 삶의 “끝”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 느낌이다.

나는 남은 반을 어떻게 채울것인가? 를 생각해 보면서 처음으로 나를 알아가고 있다.

 


파멜라 드러커맨의 맙소사, 마흔

찾다보니 40은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멈춰 서서 생각해보는 나이인것을 알았다. 40에 대해서 쓴 책과 글이 많은걸 보면.

파멜라 드러커맨의「맙소사, 마흔 (원작: There Are No Grown-Ups: A Midlife Coming-Of-Age Story)」도 작가 자신이 마흔이 되면서 세월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서 쓴 책이다.

파멜라 드러커맨은 내가 아이를 임신해서 읽었던 육아책 「프랑스 아이처럼 (원작: Bringing Up Bebe)」의 작가이기도 하다.

아이, 엄마, 가족이 모두 행복한 프랑스식 육아에 대해 쓴 이 책은 나의 현재 육아에 대한 생각에 많은 영향을 준 중요한 책 중에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힘들다고 생각하는 육아,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육아도 행복할 수 있다라는 것을 배우고 시작한 육아이기에, 나의 육아도 그리 힘들지 않을 수 있는것 같다.

 

다시 마흔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올해 들어 책도 많이 읽고, 이런 저런 새로운 것에도 도전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늘 내편이라 고마운 남편이 한국에서 「맙소사, 마흔」 책을 사다 주었다.

「프랑스 아이처럼」이 너무 좋았기에 나는 이 책에도 기대가 컸다. 그래서인지 기대만큼의 내용은 아니었지만 마흔이 되는 다른 한사람의 관점으로서는 읽을만 했다.

어쩌면 번역본이라 원작의 톤과 좀 차이가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책은 될 수 있으면 원작으로 읽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나도 번역을 하는 사람으로 원래의 의미를 전달하는것이 얼마나 힘들고, 또 언어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 있다는것을 알고 있기에.

만약 당신이 마흔의 문턱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때로는 공감하고 또 때로는 작가와는 다른 내 생각을 정리해 보는 계기가 될테니 한번쯤 읽어보는것을 추천한다.

 


40대는 나의 진짜 모습을 찾는 시기

기대만큼은 아니었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드러커맨이 책 중간 중간에 쓴 “당신이 40대가 됐다는 징후들” 중에 공감되는 것들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 외 책 내용 중에는 공감되는 부분들도 꽤 있었다. 마흔 즈음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내가 현재 던지는 질문들과 비슷했다.

 

마흔을 전후해서 자신이 스스로에게 원하는 모습과 실제 자신 사이의 간극을 직시했다. 그들은 “나에게 가능한 건 무엇일까?”, “내가 정말 잘하는 일은 뭘까?”,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은 뭐지?”와 같은 질문들을 던졌다. 그들은 자신이 해야한다고 생각했던 일을 하고 있다는 겉치레어서 벗어났다. 그런 변화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그들이 편안해 보인다는 것이다. 

 

마음에 와 닿은 부분은 드러커맨이 만난 한 노신사가 말이었다.

 

40대는 나의 진짜 모습을 찾는 시기입니다. 40대에도 나 자신을 모른다면 그 후에도 모를걸요.”

 

드러커맨도 동의한다. “40대가 되고 나서 나는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됐다.”고.

 

20살만 되면 법적으로는 어른이지만, 나는 별로 내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된적이 없는것 같다.

드러커맨의 “어른이 된다는 것은” 17가지를 봐도 내가 그동안은 어른이 아니었다는것을 알려준다. 17가지중에 가장 마음에 와닿은 것은 아래 2가지다.

남들과 있을 때도 나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다.

내가 희망하는 나 자신의 모습과 실제의 나 자신을 결합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몸은 어른이지만 진정한 어른이 아닌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다.

위의 두가지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진짜 모습을 알아야 한다.

 


40대의 여성으로 ‘자유로워’지기

「맙소사, 마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에필로그에서 프랑스의 ‘자유로운 여성 femme libre’에 대해 쓴 부분들이다.

드러커맨은 우리와 같은 여자이자 엄마다. 프랑스의 엄마들은 40대에 자유로운 여성이 된다. 한국의 엄마들에게서 별로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프랑스의 보편적인 담론에서 여성의 20대와 30대는 남들이 개디하는 행동으로 하는 시기로 본다. 하지만 40대가 되면 그녀는 자신에게 진정으로 어울리는 행동으로 하면서 점점 더 ‘자유로워’진다.”

“프랑스판 ‘자유로운 여성’의 자유는 대체로 내면에 존재한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자신의 욕구에 맟춰 삶을 현명하게 이끌어간다.”

“‘자유로운 여성’이라는 말에는 아주 성숙하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자유로운 여성에게는 품위가 있고 목표 의식이 있다. 그녀는 어떤 일들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몰입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쾌락을 누릴 줄도 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로운 여성은 아이들 잠시 남편에게 맡기고 나온 자유부인이 아니다. ㅋㅋㅋ

한 남자의 부인, 아이들의 엄마가 아닌 “나”로 내가 원하는것을 알고 “나”로 편안하게 살아가는것을 뜻한다.

한국 엄마들중에 자유로운 여성이 과연 몇이나 될까?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엄마들은 자유로운 여성이 되기는 커녕, 점점 나를 잃어가고 내 삶은 아이로 채워지기 시작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나”말고 다른 사람으로 나를 채워갈때, 그 다른 사람이 떠나 버리면 나는 껍데기만 남는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 헌신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아이에게서 대신 행복을 찾고 싶은 기대도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아이는 언젠가 성인이 되어 내 품을 떠날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아이에게서 내 행복을 찾으려 하면 안된다.

우리는 엄마로서 아이가 미성년자일때까지는 도와줘야 하지만, 동시에 “나”도 채워나가야 한다.

책에서도 말했듯, 40대에 ‘자유로운 여성’을 목표로 하는것도 제법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사는것은 이제 그만 

드러커맨은 책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를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지금의 나이 속에서 편안해지자, 내 나이의 주인이 되자.”

 

나는 어떤 선택을 하며 나이를 들어갈 것인가? 내 나이 속에서 편안해지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법률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한테 열심히 한다고 하지 않는다고. 게임이 너무 좋아서 엄마가 밥 먹으라는데도 쳐다도 안보고 게임만 계속하는 아이에게 “게임 참 열심히 하네~~” 라고 안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삶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오지 못했다는 뜻일수도 있다.

남은 반은 열심히 사는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을 더 자주하며 사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마흔을 앞두고 많은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이런 글을 쓴적이 있다.

40대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너무 좋은 나이

드러커맨도 비슷한 글로 책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지금이 제일 좋은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서와 마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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