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어서 다시 다니는 중학교 #언스쿨링

나는 요새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다.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쌍둥이 외국 중학생 두명의 통역 봉사를 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

일주일에 3일 월수금 중학교 수업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옆에서 수업 내용을 통역해주는 일이라 중학교를 다시 다니고 있는 기분이다.

내가 한국에서 중학교를 다닌 건 벌써 25년도 전의 일이다. ㅎㄷㄷ

그런데 씁쓸한 것은 그렇게 오래 전의 나의 중학교 생활을 추억할만큼 지금의 중학교가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학생일 때 학교를 다니면서 한번도 학교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심해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본의아니게 마흔이 넘어서 다시 중학교 생활을 경험하면서 나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학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학교라는 시스템이 아이들의 배움을 가장 방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느끼고 있다.

 

세월이 지나도 (많이) 변하지 않은 교실

나라가 다른데도 일본의 중학교는 나의 중학교 시절의 교실을 추억하게 만들 정도로 비슷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10년이 2번 반이나 지났는데 교실의 풍경은 너무나 변하지 않아서 씁쓸했다.

칠판이 있고, 교탁이 있고, 학생의 수만큼 책상과 의자가 있다.

책상과 의자는 내가 사용했던 의자랑 많이 달라보이지 않았다.

교실 앞 쪽 한쪽에는 텔레비전, 또 한 쪽에는 교훈이나 시간표 같은 것들이 걸려있다.

아직도 분필로 수업을 하고, 쉬는 시간에는 당번이 나와서 칠판을 지운다.

학생들은 모두 교탁을 향해서 앉아있고, 1교시에서 4교시가 끝나면 점심을 먹고 또 5교시 6교시 수업을 듣는다.

수업이 끝나면 의자를 책상에 올리고 청소를 한다.

몇 학년 몇 반이라는 표지판이 각 반마다 붙어있고, 선생님들이 머무는 교무실이 있다.

뭐지? 이 친근함은??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다녔던 학교와 비교하면 어떤가?

세상은 이렇게 많이 발전하고 변했는데 어째 학교는 그 때 그시절을 보존하고 있는 느낌.

물론 좋은 의미에서의 보존이 아니다.

내가 봉사를 하고 있는 학교가 오래된 공립 중학교라 옛날의 모습이 많이 남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새로 지은 학교나 좋은 사립 학교라면 시설도 훨씬 깨끗하고 더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생님이 가르치고 아이들은 수동적으로 교육을 ‘받는’ 큰 틀은 많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수업 구성

내가 중학생 때도 1교시가 50분 쉬는 시간이 10분이었는데 지금의 중학교도 그대로이다.

그 때는 50분이 참 길다고 느꼈는데 이제는 뭔가를 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으로 느껴진다.

물론 사람은 집중하는 시간에 한계를 있기 때문에 50분에 한 번씩 쉬어줘야한다.

하지만 1교시에 국어, 2교시는 과학, 3교시 사회 등으로 뭐 좀 배울까 하면 다른 과목으로 바로 넘어가버리니 흐름이 상당히 끊기는 느낌이었다.

50분이라고 해도 선생님이 처음에 들어와서 5~10분은 아이스브레이크 같은 개념으로 수업과 관계 없는 내용으로 잡담을 할 때도 있고 다수의 아이들에 맞춰 수업을 진행해야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도 많아서 한 교시가 끝나고 이 아이들은 과연 뭘 배웠을까 라고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굳이 하루에 그렇게 꾸깃꾸깃 여러 과목을 배울 필요가 있을까?

하루에 2,3 과목만으로 구성한다면 뭔가 더 깊이 있는 배움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국어 수업으로 예를 들어보겠다.

국어를 일주일에 3시간에 나눠서 배운다고 하면, 한 논설문을 6시간에 걸쳐, 즉 2주에 걸쳐 배운다.

다음 시간에는 전에 배운 내용을 기억해내는데 어느 정도 시간을 써야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

월수금 한 시간씩으로 나눴던 국어를 월요일 오전 시간으로 몰아서 하면 아이들과 뭔가 더 심도있는 수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중간에 10분씩 쉬는 것은 그대로 두고 말이다.

내가 다닐 때에 비교하면 아이들에게 발표할 기회도 많이 주면서 아이들의 참여가 있는 수업은 나름 좋아보였지만 교시를 나눠서 하루에 5~6과목씩 배우는 큰 틀에 변함은 없었다.

 

선생님은 더이상 권위있는 존재가 아니다

지금의 학교 모습이 내가 학교 다닐 때랑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나 아이들이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학생들을 혼 내는 모습은 더이상 볼 수가 없다.

일본의 중학생들이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순진해서 선생님들에게 대들거나 함부로 하는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큼 선생님들이 권위있는 존재로 보이지 않는다.

선생님들이 권위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바람직한 모습이지만 가끔 졸거나 딴 짓을 하는 아이들을 상대하면서 약간 쩔쩔 매는 듯이 보여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학생 수는 한 반에 60명씩 있었던 내가 다닐 때와 비교하면 35명 정도로 훨씬 적지만 그래도 한 선생님이 케어할 수 있는 한위는 훨씬 넘기에 어쩔 수 없다는 건 안다.

그러고보면 내가 학생 때는 체벌을 밥 먹듯이 하던 선생님들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화풀이를 하고 스트레스를 푼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 옛적 그 선생님들 중에 아이들의 성적과는 관계없이 인간으로써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던 선생님들은 과연 몇 명이나 있었을까…

그렇다면 아이들의 배움에 있어서 선생님은 어떤 존재여야할까?

언스쿨링(낯선 단어라면 블로그 밑쪽 설명 참조)에서는 배움은 아이가 스스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나 선생님은 일방적으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패실리테이터(facilitator)로서 아이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아무리 선생님의 권위가 떨어졌다고 하지만 교육의 주도권이 선생님에게 있는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수동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모든 아이들은 학교 생활이 즐거울까?

일 년 정도 전만 해도, 그러니깐 언스쿨링이라는 것에대해 알기 전까지는, 학생이 학교를 안 다닌다는 것은 나에게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학교를 안 다니면 불량 학생, 문제아, 아니면 어딘가 몸이 안좋은 아이일거라 생각할 것이다.

교육 = 학교 이라는 공식이 뼛속까지 박혀 있는 사람이 다수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학교가 필요할까? 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너는 학교에 다니는게 즐겁니? 라고 한 아이 한 아이에게 물어보고 싶다.

25년 전의 나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공부로 치열했지만 친구들과는 즐거웠기에 즐겁다고 대답했을까?

공부, 배움에 대한 즐거운 기억은 있을까?

교실 제일 뒤쪽에 앉아서 아이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나는 생각에 잠긴다.

공부를 잘하고 수업에 잘 따라가는 몇 몇의 모범생이 아니라면 아침부터 6교시까지 흥미도 없는 수업을 들어야하는 것이 괴롭지는 않을까?

다수에 맞추는 수업이라 어쩔 수 없지만, 모범생들에게는 수업 진행이 느리게 느껴질 것이고, 열등생에게는 따라가지 못하는 재미없는 수업일지도 모른다.

책 표지에 낙서를 하고, 뒤통수가 졸고 있거나, 멍 때리는 느낌의 몇몇 아이들이 측은하게까지 느껴졌다.

너희들이 진정 배움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일까?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아이들을 이 곳에 가둬 둔 것은 아닌지.

지금 이 순간이 괴롭다면, 인생을 살면서 어느 순간에는 꼭  배움의 즐거움을 알면 좋겠다고 한 명 한명 아이들의 뒤통수에 나의 바램을 날려본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 학교를 바꿀 수 없다면 언스쿨링이 답일지도

학교의 문제점에 대해 다룬 서적이 굉장히 많다.

모가 나서 튀는 아이들은 두들겨서 다 고만고만하게 획일화하는 것이 학교 시스템이다.

아이들로부터 진정한 배움의 즐거움과 창의력을 빼앗아간다.

하지만 그런 학교의 문제를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다닌 학교랑 지금의 학교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만 봐도 학교를 개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한다는 말이 있듯이, 학교 시스템이 안 맞는다면 학교를 떠나는 선택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왜냐면 배움 = 학교는 아니기 때문이다.

어른이 떠먹여 주는 것을 받아 먹기만 하는 수동적인 배움에서 벗어나 아이의 흥미와 관심을 바탕으로 주도적으로 탐구하면서 배워나가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 해답을 언스쿨링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홈스쿨링은 들어본 사람이 있어도 언스쿨링은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언스쿨링은 홈스쿨링의 일부이긴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히 다르다.

홈스쿨링은 학교의 연장선에 있을 수 있지만, 언스쿨링은 학교와 정반대에 있다고 보면 된다.

언스쿨링은 어른이 정해주는 내용을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아이가 관심이 있는 분야를 아이 스스로 파고 들어 완전 아이 주도적으로 배울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학교에 길들여진 우리 같은 어른들에게는 너무나 파격적인 교육 방법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요즘 언스쿨링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언스쿨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소개한 블로그이다. 관심이 있으면 읽어 보길 권한다.

MIT 졸업생 엄마가 언스쿨링 교육을 선택하는 이유 #언스쿨링

 

추천 책 – ‘Unschooled’

내가 봉사를 통해 중학교를 다시 경험하면서 자습시간이나 점심시간에 틈틈히 읽은 언스쿨링에 관한 책이다.

Unschooled: Raising Curious, Well-Educated Children Outside the Conventional Classroom by Kerry McDonald 

교무실에서 읽고 있을 때 다행히도 나에게 무슨 책을 읽고 있냐고 묻는 선생님이 없었다.

“학교를 안 다니면서 아이가 스스로 하는 배움에 대해 읽고 있어요” 라고 대답한다면 선생님도 나도 곤란했을테니. ^^;;;

학교라는 시스템의 한계를 눈앞에서 목격하다보니 내용이 한층 더 쏙쏙 공감이 되었다.

언스쿨링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 혹은 이 블로그를 읽고 궁금해 졌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아쉬운 점은 한글 번역본이 없다….)

만약 당신이 교육=학교 라는 공식을 믿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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