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졸업생 엄마가 언스쿨링 교육을 선택하는 이유 #언스쿨링
언스쿨링 (unschooling) 이란?
나도 처음 들었을 때 그랬듯이 언스쿨링(unschooling)이라는 말이 생소할지도 모르는 분을 위해 언스쿨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살짝 짚고 넘어갈까 한다.
한국언스쿨링연구소(KUI)에 따르면 “언스쿨링(자기주도교육)은 교육목적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과 관계없이 개인이 스스로 선택한 활동과 교육받은 사람의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교육이다.”
한마디로 교육을 학교 교육과 동일시하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누군가가 가르쳐주는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주도로 배워나가는 것이다.
언스쿨링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는 언스쿨링에 매력에 푹 빠져들고 있다.
언스쿨링에 대한 더 자세한 소개는 한국언스쿨링연구소의 웹싸이트를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내가 언스쿨링에 관심이 생긴 계기
홈스쿨링은 오래 전부터 들어는 왔지만 그냥 유난스러운 가족들이 선택하는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공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나에게 학교에 안 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내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또 육아에 대해 많이 공부하면서 아이들은 내가 상상한 것 그 이상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줬던 많은 미취학 아동들이 학교를 들어가고 점점 커가면서 호기심도 꿈도 없는 아이들로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창의력을 키워준다는 표현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창의력은 키워주는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똑같이 가지고 태어난다.
100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라느냐에 따라서 깎이는 속도와 정도가 차이가 날 뿐이라고 생각한다.
창의력을 키워주는 독서방법, 창의력을 키워주는 학원등을 접할 때면 나는 고구마를 먹은 것 같이 속이 답답해지곤 한다….
그러기에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자나깨나 고민하는 것은 아이가 가진 호기심과 창의력을 망가뜨리는 피해를 어떻게 하면 최대한 줄일 수 있을까이다.
교육의 장소가 학교에서 집으로 바뀐 홈스쿨링은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새로 알게 된 것이 언스쿨링이었다.
미래의 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길러주지 못하는 공교육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할 미래의 세상은 이제까지의 어느 때보다도 개개인성이 중요하고 창의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할지에 대해 내 의견을 써본 블로그도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시길 바란다.
[서평] 이지성 작가의 “에이트” – 아이들에게 창의력이 필요한 이유를 알려주는 책 #AI #인공지능 #공감능력 #창의력
토드 로즈 저 <평균의 종말>에서 이런 내용이 나온다.
“현재의 공교육은 가능한 한 많은 개개인들을 똑같은 안전 수준으로 강등시키고 표준화된 시민을 길러내고 훈련시키면서 반대 의견과 독창성을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이는 미국뿐만이 아니라 (중략) 세개 전역에서의 공교육이 내세우고 있는 목표다.”
우리는 평균보다 잘하면 우등생, 평균보다 못하면 열등생으로 평가받는 학교 시스템에 너무나 익숙하다.
평균과 비교하는 삶은 학교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결혼할 때도, 아이를 낳아도 계속된다.
나는 끝없이 누군가와 비교당하고 나도 누군가와 스스로를 비교하면서 우쭐거리기도,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평균의 종말>을 읽는 내내 우리 모두가 얼마나 평균의 게임의 노예로 살고 있나를 생각하게해서 씁쓸했다.
나는 내가 왜 최고의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나와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창의력이 부족하다고 느낄까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이제는 그 답을 알것 같다.
나는 공교육이 가장 원하는 모습의 부모 말 잘 듣는 아이, 선생님 말 잘 듣는 모범생이 되기 위해 노력해 오면서 ‘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혼날 일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고, 시키는 공부를 잘했고, 배움의 열정보다는 점수에 연연했고,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남들에게 멋져보이는 길을 선택하면서 살아왔다.
반항을 했다면, 문제아라는 낙인이 찍혔다면 외부의 압박은 있었겠지만, ‘나’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최고의 기업들이 더이상 학벌로 직원을 채용하지 않고 개개인성을 보는 세상이 오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까지도 아이를 어떻게든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하려고 노력한다.
미래의 변화에 영 따라오고 있지 못하는 공교육에 나는 많은 의심을 품기 시작했고 공교육의 우등생이었던 나는 공교육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빠를수록 더 똑똑하다는 거짓말
<평균의 종말>에서 블룸의 흥미로운 연구에 대해 소개가 되었다.
학생들을 ‘고정 속도형 그룹’과 ‘자율 속도형 그룹’의 두 그룹으로 나눈 후 학습 성취도를 비교한 연구였다.
쉽게말하면 ‘고정 속도형 그룹’은 모든 아이들이 같은 내용을 같은 속도로 배우는 전통적 방식이라면, ‘자율 속도형 그룹’은 학생들의 따라 학습 시간을 필요한 만큼 늘리거나 줄이는 것을 허용한 방법이었다.
지도 과정이 끝나갈 무렵에 첫번째 ‘고정 속도형 그룹’은 약 20퍼센트의 학생이 수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데 반해 ‘자율 속도형 그룹’의 학생들은 90퍼센트 이상이 수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 수준이었다는 결과가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학습 속도에 약간의 유연성을 허용한 것 뿐인데 학생들이 아주 뛰어난 성취도를 나타낸 것이다.
학습 속도를 학습 능력과 동일시하는 것은 반박의 여지 없는 오류라는 주장이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를 돌아보면 빨리 내용을 습득하는 아이, 문제집을 빨리 푸는 아이, 시험문제를 빨리 푸는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 같다.
지금의 학생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거라 생각한다.
‘고정 속도형 그룹’에 가까운 공교육에서는 모든 학생들에게 고정된 속도의 학습을 강요하고 개개인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70퍼센트의 아이들에게서 성취감을 빼앗고 있지는 않은지?
어떤 교육이 되었든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커리큘럼으로 정해진 시간에 같은 속도로 교육을 받는 방식만큼은 절.대.로 피하고 싶다.
질문이 허락되지 않는 공교육의 교실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의 저자 김하영군은 16살에 대학 강의를 들으면서 수업이 끝나고 마지막에 교수님이 질문있냐는 물음에 행여나 질문을 하는 학생에게 눈치를 주고 노골적으로 싫은티를 내는 분위기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는 강의실 한편에 앉아 대학이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원하는 공부는 무엇인가? 그런 공부를 과연 대학에서 할 수 있을까? 질문이 없는 대학교는 과연 정상인 걸까?”
나도 초중고를 한국에서 다니면서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질문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질문으로 선생님의 수업의 흐름을 깨는게 눈치보였고 나역시도 누군가의 엉뚱한(내가 생각했을때) 질문에 은근 싫었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진 않았지만 대학의 모습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교수님도 질문 있냐고 묻지만 실제로 질문을 받으면 좋기만 할까?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또 많은 외국사람들과 일하면서 자유롭게 질문하고 토론하는 모습들이 너무 부러웠다.
질문이 허락되지 않는 교육에 너무 익숙해진 나에게는 질문을 하나 던지는 것도, 누구에게 내 의견을 말로 전달하는 것이 힘겨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태도가 사회생활에 얼마나 불리한지를 알게되었다.
질문이 허락되는 않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몬테소리교육의 매력에 푹 빠지다, 하지만 현실은 유치원까지
공교육의 대안으로 처음부터 언스쿨링을 답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다.
언스쿨링을 알기 전에 내가 관심이 많았던 교육은 몬테소리였다.
지금도 관심이 많아서 현재 몬테소리교육 자격증을 따려고 수강중이기도 하다.
전에도 ‘몬테소리’는 들어본적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다가 아이의 어린이집을 계기로 몬테소리교육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모든 아이는 자기 스스로를 교육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자기 주도로 아이들이 능력을 스스로 키워가도록 돕는 몬테소리교육의 매력이 푹 빠지고 말았다.
몬테소리를 알게 된 것은 나의 교육 철학에 엄청난 영향을 준 것임은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창의적인 재능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에 몬테소리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어 구글(Google)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둘 다 몬테소리교육이 자신들의 인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창의적인 기업 원탑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닌 구글의 창업 이념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나는 몬테소리교육이 대체 어떤 것이길래 그런 사람들이 많은지가 너무 궁금해져서 열심히 파고 들었고 지금은 자격증까지 공부중이다.
우리 가족이 현재 살고 있는 일본에서는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몬테소리교육은 인기가 많아서 몬테소리교육을 하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상당히 많다.
우연으로 시작되긴 했지만 우리 아이도 현재 몬테소리교육을 하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고, 내년부터는 몬테소리교육을 하는 유치원에 다닐 예정이다.
그러나 초등학교 교육으로 올려가면 몬테소리교육을 하는 학교는 도쿄에 단 3개로 줄어든다.
우리 아이를 몬테소리교육을 하는 초등학교로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지만 3개의 학교 모두가 위치적으로 그리 가까운 곳은 아닌게 걸렸다.
맹모삼천지교라고는 하지만 토쿄 중심을 벗어나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어서 만족하고 있는 현재의 동네를 포기하면서까지 몬테소리교육의 초등학교 근처로 이사를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선택지는 어떤게 있을까?
미국에는 초중고까지 몬테소리교육을 하는 학교가 꽤 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우리 하와이가서 몬테소리 학교 보낼까?” 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 한 적도 있다.
국제학교, 인터라는 선택지도 생각하면서 이런 저런 것들을 알아보다가 언스쿨링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아이가 자신의 교육을 주도하는 언스쿨링은 몬테소리교육의 철학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많기에 매력적으로 느꼈다.
우리 부부가 언스쿨링을 선택할 수 있는 이유
학교가 모든 아이들에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공교육은 나라가 반드시 제공해야할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언스쿨링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아도 어떤 부모에게는 전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부모가 주도가 아닌 아이가 주도해서 자기가 흥미를 갖고 원하는 것을 배워 나가는 언스쿨링에 많은 매력을 느끼고 있다.
솔직히 학교를 다니는 것과 언스쿨링을 정확히 비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이것만은 확신한다.
우리가 경험한 학교가 ‘학교’라면 우리 아이는 보내지 않겠다고.
만약 우리가 언스쿨링을 선택하게 된다면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독립적 성향의 부모라서
우리 부부는 오랫동안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나도 남편도 대학부터 이미 부모와 떨어져서 지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친척조차 없는 외국에서 10여년을 독신생활을 해오면서 이미 오래전에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했다.
한국의 문화로 결혼할 때 경제적으로 부모의 도움을 많이 받지만 우리는 결혼식부터 시작해서 집을 사고 아이를 키우는 것을 오로지 둘만의 능력, 특히 경제능력으로 해오고 있다.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면 부모의 간섭을 덜 받는 자유를 누리는 좋은 점도 있다. ㅎㅎㅎ
솔직히 버거울 때도 있었고 지금도 여유있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 둘만의 힘으로 지금까지 우리 가족을 이끌어 온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이미 20대 초반에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서인지 우리는 둘 다 독립적인 성향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우리 아이도 20살의 성인이 되면 독립을 시키기로 남편과 결심했다.)
언스쿨링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쉽게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기 철학을 꿋꿋이 밀고 나갈 수 있는 능력이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경험을 해왔기에
나는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일본에서 외자계 기업에서 일을 하면서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접할 기회가 많았다.
나와는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과 협력하고 부딪히면서 나의 가치관도 많이 바뀌었고 사람들의 ‘다름’을 당연히 인정하게 되었다.
한 나라에서만 살아왔다면 나는 지금과는 분명 많이 다른 사람일 것이라 확신한다.
남편도 외국 생활을 오래했지만 옆나라 일본이었기에 나를 만나면서 세상이 많이 넓어졌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린 우리 아이를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경험을 시켜줘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이 많다.
한 나라안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이 많다.
더 넓은 세상에 나가야지만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안다.
좁은 교실에서 한정된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 10대를 다 보내버린다면 아깝지 않은가?
세상을 살아가는 준비를 하기 위해서 공교육이 최우선책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커져간다.
친구는 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외국 생활을 오래하다보니 학교 때 친구들과는 자연스레 멀어졌고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는 오히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만난 친구들인 경우도 많다. (물론 세심하게 못 챙긴 내 책임이 크지만…)
물론 어렸을 때 친구들과 가끔 소통하고 만나면 그것대로 즐겁지만 그동안의 삶이 너무 다르고 현재의 삶이 다르기에 깊이 공감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것 같다.
어느새 나의 친구들도 학부모가 되어 있었고, 교육 철학이 나와는 너무 달라서 내 의견을 말하는게 꺼려졌다.
만약 언스쿨링을 하게 되면 우리 아이가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릴 기회를 뺏게 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님으로써 같은 나이의 아이들, 한정된 몇명의 선생님들로 교류하는 상대가 제한되면서 오히려 아이들은 제한적인 사회성을 기르게 된다는 내용을 책에서 접한 후로 마음이 편해졌다.
언스쿨링을 하면서 학교에서는 제공해줄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가 많아진다면 아이는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더 많은 사회성을 배울 수 있겠다고 납득이 되었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서
한국은 학벌과 스펙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도 상위권 아이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하지만 모두에게 대학이 답이 아니기에 공부를 선택하지 않는 아이들은 좀 더 여유로운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다.
그와는 다르게 한국은 거의 모든 아이들이 대학이라는 목표를 놓고 경쟁한다.
공부가 맞지 않는 아이들은 죄인이라도 된냥 괴로운 학창시절을 보내야한다.
공부가 싫은 것 뿐인데 문제아 취급을 받고 사회의 삐딱한 시선에 아이들도 삐뚤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남들이 다 가는 길이 아닌 소수의 언스쿨링의 길을 선택했을 때 아이가 볼 수 있는 피해는 어쩌면 한국에서 더 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언스쿨링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내가 한국에서 아이를 키워도 언스쿨링이라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 아이를 키우기 있기에 언스쿨링을 감히 고려해볼 수 있는 건 아닌지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부부는 한국을 떠난지 오래되었기에 한국의 학연 지연의 영향도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일본도 학연 지연이 조금은 있지만 그리 심하지 않고, 일단 우리는 외국인이기에 학연 지연과는 상관없이 분류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 부부가 학연 지연으로부터 일찍부터 자유로웠고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기에 아이를 언스쿨링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지도 모르겠다.
나는 ‘학부모’가 아닌 ‘부모’이길 바란다
한진희 저 <누리보듬 홈스쿨>에서 저자가 아이를 학교에 안 보내기로 결심한 이유가 나의 마음과 비슷해서 와 닿았다.
“끝까지 가는 내내 아이의 오늘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중략> 오늘이 살만하다고 느낄 수 있었으면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을 한 결과가 내가 아이를 언스쿨링한다면 얻고 싶은 결과와 비슷했다.
“보장할 수 없는 미래를 위해 스스로의 삶이 아닌, 선택의 여지도 없이 10대라 이름 붙여진 10년 동안 오늘을 몽땅 저당 잡힌 삶이 아닌 것에 감사했다.”
나는 아이를 특별한 아이로 키우고 싶은 욕심에서 언스쿨링을 선택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아이가 자신을 학교라는 평균의 게임에서 잃지 않고 지켜나갔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일 뿐이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가기위한 공부가 아닌 진정한 배움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인간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누리보듬 홈스쿨>에서 ‘부모’보다는 ‘학부모’로 살아가야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학부모’가 아닌 ‘부모’로 아이의 곁에 있어주고 싶다.
과연 나는 2년 후에 어떤 선택을 할까?
나는 공교육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교육 철학과 공교육의 목적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스쿨링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까지는 아직 2년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하지만 지나온 2년을 생각하면 2년은 절대 긴 시간은 아니다.
학교를 보낼 것인지, 보낸다면 어떤 학교를 선택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과정에 서있다.
학교를 보낸 후에도 언스쿨링을 선택할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우리 가족의 교육 철학을 가장 잘 뒷받침해줄 수 있는 교육 방식을 택하게 될 것이다.
그 선택이 언스쿨링일수도 있기에 나는 언스쿨링에 대해 더 연구할 것이다.
2년 후에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지가 벌써부터 궁금하다. ^^
참고 서적 + 미디어
마흔+1의 나이인 나에게 감동을 준 20살의 청년 임하영 저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언스쿨링에 관심이 생기면서 우연히 유투브에서 <학교를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의 저자 임하영군의 영상을 접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하루도 다니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라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살의 풋풋함도 느껴지면서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약간은 쑥쓰러워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정확히 전달하는게 너무 인상깊었다.
영상을 보고 감동을 받아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을 당장 e-book으로 구매해서 읽기 시작했다.
<임하영 저 –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나에게 많은 감동을 준 임하영군에게 감사하다.
임하영군의 인생을 응원하고, 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뤘으면 하는 바램이다.
언젠가는 꼭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인물이다.
평균의 종말 –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왔나
온라인 월정액 도서 서비스를 뒤적이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책이다.
아마도 나의 눈길을 끈 단어는 ‘교육’이었던거 같다.
언스쿨링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평균의 게임이 펼쳐지는 학교라는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게 한 책이다.
<토드 로즈 저 – 평균의 종말>
누리보듬 홈스쿨 – 아이의 행복한 오늘을 위한 선택
서적 수를 보면 한국에서 홈스쿨링, 언스쿨링이 인기 없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 책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지는 않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부분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은 내용이었다.
<한진희 저 – 누리보듬 홈스쿨>
언스쿨링 (유투브)
한국에서 언스쿨링을 하고 계시는 가족의 유투브 채널이다. 언젠가는 한 번 꼭 만나보고 싶은 가족이다.
https://www.youtube.com/c/unschooling-korea
임하영 영상 (유투브)
마지막으로 나에게 감동을 준 임하영 군의 유투브 영상을 소개하면서 마치려한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